
* 포스터에는 명의가 '학생회장'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개인 명의로 발표되었음.
‘혁신교육’은 실패한다
김경훈
(태재대학교 혁신기초학부 1 / 前 정부 청소년특별회의 부의장)
I. 서론
최근 몇 년간 고등교육 및 중등교육 담론에서 “혁신”은 가장 강력한 정당화 언어 가운데 하나로 기능해 왔다. 특히 오늘의 포럼에서 다뤄지는 스탠퍼드 온라인 고등학교(OHS), 미네르바대학교, 태재대학교와 같은 기관들은 기존 학교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교육모델의 사례로 제시되어 왔다. 이들 기관은 공통적으로 소규모 토론수업, 온라인 또는 하이브리드 학습환경, 세계시민성, 자기주도성, 역량 중심 교육, 데이터 기반 학습설계 등을 전면에 내세운다. OHS는 “지적으로 모험적인 학생과 교사의 세계적 공동체”를 표방하며, 평균 12명의 소규모 수업과 동시적 온라인 세미나를 강조한다. 미네르바는 “Habits of Mind”와 “Foundational Concepts”를 중심으로 비판적 사고, 문제해결, 리더십, 글로벌 시민성을 핵심 목표로 제시한다. 태재대학교 역시 비판적 사고, 창의적 문제해결, 공감과 다양성, 사회시스템 항해, 리더십과 협업, 지속가능성과 형평성 등을 핵심 역량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기관의 자기서사는 교육적 정당성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교육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는 것은 단지 수업 방식이 새롭거나 기술적으로 정교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질문, 곧 그 교육이 어떤 인간을 형성하려 하는지, 어떤 사회질서를 전제하는지, 어떠한 공공성을 지향하는지를 묻는 작업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위 기관들에 대한 평가는 ‘혁신성’의 찬탄이 아니라 ‘교육철학적·사회정치적 정합성’의 검토를 통해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본고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늘날의 혁신교육기관들은 역사적으로, 특히 19세기 이래 반복되어 온 ‘대안적 학교체제’의 역사적 유혹을 다시 보여준다. 둘째, 이들 기관은 기존 교육체제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종착점, 즉 공적 제도로서의 보편화 가능성과 정치철학적 목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셋째, 세계시민성·인간력·리더십·문제해결 역량을 강조하는 담론은 종종 인간을 비판적 시민이 아니라 고급 적응주체로 재구성하는 기능주의로 수렴한다. 넷째, 소수 선발과 높은 비용, 제한된 접근성, 플랫폼화된 학습환경은 이들 기관이 약속하는 보편적 사회혁신의 언어와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이 논의를 통해 본고는 혁신교육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혁신이 공공성의 기준 아래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II. 역사적 전사前史: 랭카스터 시스템과 ‘혁신학교’의 반복 구조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세기 초 랭카스터(Joseph Lancaster)가 제안한 모니토리얼 시스템(Monitorial System), 즉 랭카스터 시스템은 저비용 대량교육의 혁신적 모델로 널리 주목받았다. 이 제도는 한 명의 성인 교사가 다수의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대신, 상대적으로 앞선 학생들을 “모니터”로 활용하여 다른 학생들을 지도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이 시스템은 값싸고 빠르게 교육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각광받았고, 1806년 무렵에는 가장 널리 모방된 교육모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 모델은 약속된 수준의 교육적 질과 지속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 실패의 잔해 속에서 보다 안정적인 공교육 체제가 형성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랭카스터 사례가 시사하는 핵심은 개별 제도의 성패 여부를 넘어선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개혁이 반복적으로 빠지는 구조적 유혹이다. 첫째, 창립자의 카리스마와 비전이 제도적 검증을 대신하는 경향이다. 둘째, 기존 학교체제를 부정하는 행위 자체가 곧 교육적 우월성의 증거인 것처럼 간주되는 경향이다. 셋째, 공적 재생산 가능성과 사회적 확장성보다 “이전과 다르다”는 상징적 차별성에 집착하는 경향이다. 이런 점에서 혁신교육 담론의 가장 큰 위험은 보수성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예외화에 있다. 자신을 언제나 기존 체제의 바깥에 있는 특별한 실험으로 위치시키는 순간, 교육은 공적 제도가 아니라 전시적 프로젝트로 축소되기 쉽다.
따라서 오늘날의 혁신교육기관들을 평가할 때에도 중요한 것은 이들이 기존과 얼마나 다른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 차이가 어떤 공적 질서로 귀결되는가, 그리고 그 질서가 누구에게 열려 있는가가 핵심이다. 이 점을 묻지 않는 혁신담론은 대체로 “새로운 방법”의 홍보에는 성공할지라도 “새로운 교육질서”의 정당화에는 실패한다.
III. 분석틀: 교육적 비판의 네 가지 기준
본고는 스탠퍼드 OHS, 미네르바대학교, 태재대학교를 동일한 제도형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전자는 중등교육기관이고, 후자 둘은 고등교육기관이며, 역사적 맥락과 제도적 법적 지위도 상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기관을 하나의 분석틀 안에서 검토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선발적 소수교육, 온라인 또는 하이브리드 기반 학습환경, 역량 중심 교육과 세계시민 담론, 기존 학교체제에 대한 비판적 자기표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러한 공통점을 바탕으로 네 가지 분석 기준을 설정한다.
첫째는 종국적 목표의 명료성이다. 혁신교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것은 사회 전체의 교육질서를 변형하기 위한 공적 실험인가, 아니면 소수 선발집단을 위한 예외적 고급교육인가. 둘째는 선발성과 공공성의 관계이다. 모두의 잠재력과 세계시민성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소수 엘리트를 선발하는 체제가 어떠한 규범적 긴장을 갖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셋째는 인간 이해의 방향이다. 역량·적응력·문제해결·리더십의 언어가 비판적 시민형성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넷째는 공동체 및 대학의 본질성(university-ness)의 문제이다. 특히 온라인·하이브리드 모델이 학교와 대학을 단지 정교한 학습 플랫폼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아닌지, 연구·교육·공동체의 결합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이 네 기준은 교육학, 고등교육론, 비판적 시민교육론을 가로지르는 질문들이다. 따라서 아래의 사례분석은 개별 학교의 운영 실무를 소비자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학교들이 어떤 교육적 인간형과 사회질서를 전제하는지를 검토하는 작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1. 종국적 목표의 부재: 혁신은 수단인가, 정체성인가
혁신교육기관이 흔히 직면하는 첫 번째 문제는 “혁신”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을 스스로 충분히 사유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세대 간의 지식, 규범, 사회적 감각을 재생산하는 제도다. 따라서 교육기관은 단지 새로워 보이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새로움이 궁극적으로 어떤 정상성을 만들고자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혁신기관은 자신을 기존 제도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순간에는 강력하지만, 정작 그 대안이 사회 전체에 대해 갖는 규범적 지위를 설명하는 데서는 빈약해진다.
태재대학교의 공식 자료는 학생을 “global leaders”로 길러내고, 비판적 사고·창의적 문제해결·리더십·사회시스템 항해·글로벌 시민성 같은 역량을 핵심 교육목표로 제시한다. 미네르바 역시 자신들의 교육목표를 리더, 혁신가, 폭넓은 사유자, 글로벌 시민의 형성으로 정리한다. 스탠퍼드 OHS 또한 세계적 공동체, 지적 모험성, 글로벌 시민성을 자기 정체성의 중심에 둔다. 그러나 이들 설명은 대체로 “무엇을 잘하는 인간을 만들 것인가”에는 답하지만, “그 인간들이 어떤 공적 질서를 위해 존재하는가”에는 상대적으로 침묵한다. 다시 말해, 혁신의 방향은 제시되지만 혁신의 종착점은 충분히 규정되지 않는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은 이른바 ‘제도화의 역설’이다. 혁신교육이 사회 전체의 표준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혁신처럼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끝까지 소수의 실험으로 남을 경우, 차별성은 유지할 수 있어도 공공성은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혁신교육은 자신이 예외 상태로 존재할 것인지, 아니면 재생산 가능한 공적 모델로 제도화될 것인지에 대해 철학적으로 답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혁신은 교육질서의 재구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브랜딩의 언어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2. 평등의 수사와 선발의 제도: 시민교육과 엘리트주의의 긴장
두 번째 문제는 평등, 다양성, 세계시민성의 언어와 실제 제도 형식 사이의 긴장이다. 스탠퍼드 OHS는 공식 학교 프로필에서 총 986명의 학생, 평균 학급당 12명, 13%의 재정보조 수혜 비율을 제시하고 있으며, 2026–27학년도 전일제 연간 학비를 약 4,770만 원으로 공지*하고 있다. 미네르바는 2025–26학년도 기준 연간 비용(학비, 주거 등)을 약 8,417만 원으로 제시**한다. 태재대의 경우 공시된 자료 기준 연간 예상 학비가 4년 총계 7,200만원, 연 평균 1,800만 원으로 의대 등을 제치고 국내 대학 중 1위다. 이 수치는 각각의 기관이 단순한 개방형 온라인교육이 아니라 상당한 선발성과 비용을 전제로 한 고급 교육모델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대학들은 개방대학(Open/Opened Universities)과는 명확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
물론 선발성과 비용이 곧바로 교육적 결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들 기관이 자신을 단지 “우수자 교육기관”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은 대체로 잠재력의 보편성, 세계시민성, 인류문제 해결, 조화롭고 지속가능한 세계, 포용적 리더십 등을 표방한다. 그러나 그러한 언어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교육기회의 배분과 접근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OECD는 영재·우수자 교육 정책을 검토하면서, gifted education이 본질적으로 형평성과 포용의 문제를 수반하며, 과소대표집단과 불리한 배경의 학생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우수자 교육”은 능력의 발견만이 아니라 사회적 선발의 정치학을 포함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스탠퍼드 OHS·미네르바·태재대의 문제는 엘리트 교육이라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제는 보편주의적 수사와 선발주의적 제도 형식이 충분히 화해되지 못한 채 공존한다는 점이다. 만약 이 기관들이 소수 엘리트 교육기관임을 자임한다면, 논점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계시민성, 사회변화, 공공선,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소수 선발과 고비용 구조를 유지한다면, 그 담론은 불가피하게 자기모순을 노출한다. 이는 “누가 세계를 바꾸는가”라는 질문이 결국 “누가 세계를 바꿀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가”라는 질문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 https://onlinehighschool.stanford.edu/tuition?
** https://origin-www.minerva.edu/undergraduate/tuition-fees/
*** OECD. (2021). Policy approaches and initiatives for the inclusion of gifted students in OECD countries. OECD Education Working Papers Series.
3. 인간력의 기능주의: 비판적 시민이 아니라 고급 적응주체를 만드는가
세 번째 문제는 인간 이해의 방향이다. 오늘날 혁신교육기관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어휘는 비판적 사고, 창의성, 협업, 리더십, 적응력, 문제해결, 자기주도성, 데이터 기반 판단과 같은 역량 언어이다. 역량이 무엇인지, 이것들이 역량과 연결되었는지 등은 차치하고 이 언어들은 그 자체로 무의미하지 않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능력은 중요한 교육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역량이 교육의 목적 전체를 대체하는 순간 발생한다.
미네르바의 공식 설명은 Habits of Mind와 Foundational Concepts를 통해 알고리즘적 사고, 통계적 추론, 감정지능, 청중 분석, 설득과 협상, 문제해결 같은 요소를 반복 훈련한다고 밝힌다. 또한 이 대학은 수업을 온라인 세미나, 완전한 능동적 참여, 학습과학 기반의 설계, 데이터 기반 피드백 루프로 조직한다.* Thompson과 Amaral(2022)은 바로 이 점을 비판하면서, 미네르바가 연구와 학문공동체보다는 전이 가능한 기술과 역량을 제도 중심에 놓고, 더 나아가 고등교육 전체를 재조직할 수 있는 “확장 가능하고 이전 가능한 비즈니스·운영 모델”의 청사진으로 자신을 제시한다고 분석한다.
이 비판은 태재대학교의 아이덴티티인 ‘인간력’ 및 역량 담론을 검토하는 데에도 유효하다. 태재대학교는 공식 교육목표와 교과구성에서 비판적 사고, 창의적 문제해결, 데이터 분석, 판단과 의사결정, 리더십과 협업, 사회시스템 이해, 글로벌 시민성을 핵심적으로 강조한다. 또한 대학원을 비롯한 AI·데이터사이언스 프로그램은 기술 전문성, 산업·사회 현장 문제 해결, 디자인 사고, 리더십 준비, 산업 및 학계 파트너와의 협업 등을 중요한 목표로 제시한다. 이러한 구성은 분명 전통적 분과지식 중심 교육과는 다른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공공세계를 비판하고 재구성하는 시민”보다는 “복잡한 환경에 민첩하게 적응하고 성과를 창출하는 주체”로 재구성할 위험도 내포한다.
이 지점에서 세계시민교육론의 비판적 논의가 중요해진다. 최근 연구들은 글로벌 시민교육이 하나의 단일한 교육철학이 아니며, 시장친화적 자기계발과 국제경쟁력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GCE와, 사회적 책임·정의·인권·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비판적·가치기반 GCE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글로벌 시민 담론은 때로 “비판적 시민”의 형성보다 “글로벌 노동시장에 적응 가능한 유연한 인재”의 양성을 은폐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런 점에서 혁신교육기관들의 “글로벌 시민” 담론은 그 자체로 진보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어떤 시민성을 상정하는지에 따라 상반된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역량의 유무가 아니라 역량의 종속성이다. 비판적 사고와 리더십, 문제해결이 시장과 조직에 대한 적응에만 봉사할 때, 교육은 사회에 브레이크를 거는 힘을 잃는다. 대학과 학교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주어진 세계에 효율적으로 들어맞는 인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주어진 목표들, 이를테면 경쟁, 성장, 효율, 혁신 그 자체가 정당한지 질문할 수 있는 존재를 길러내는 데 교육의 고유성이 있다. 이 점에서 혁신교육이 기능주의를 넘어서려면, 인간을 단지 “업그레이드된 문제해결 기계” 따위가 아니라 공공세계의 비판적 행위자로 이해하는 철학적 전환이 필요하다.
* https://www.minerva.edu/undergraduate/philosophy-pedagogy/
4. 플랫폼으로서의 학교, 공동체로서의 학교: 온라인·하이브리드 모델의 한계
네 번째 문제는 학교와 대학의 공동체성이다. OHS는 기존 교육을 비판하며 동시적 온라인 수업, 세계적 학생구성, 플립드 러닝, 지속적 상호작용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동아리, 밋업, 홈커밍 등 ‘고전적인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 간 유대를 보완하려 한다. 이는 온라인 세미나의 교육적 효율성과 별개로, 학교가 단순히 콘텐츠 전달과 토론의 장을 넘어 생활세계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학교는 지식전달만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 갈등과 조정, 비공식적 사회화, 또래성과 소속감을 통해 작동한다. 스스로를 “의미 있고 사회적인 경험”으로 설명하는 OHS의 언어는 바로 이 철학적 결핍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련 연구들도 청소년 교육에서 이 문제가 단순한 정서적 부차 요소가 아님을 시사한다. McKellar(2023) 등의 연구는 원격·하이브리드·대면 수업을 비교했을 때, 청소년의 교사 및 또래 연결성(connectedness)과 학업적 몰입이 학습양식에 따라 유의한 차이를 보이며, 연결성이 이러한 차이를 매개하는 핵심 변수라고 보고하였다. 또한 학교 연결성은 청소년의 사회·정서·행동적 건강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 지표로 제시된다. 다시 말해, 학교의 질은 단지 수업설계의 정교함만으로 판단될 수 없으며, 학생이 자신을 어떤 공동체의 일원으로 경험하는지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온라인·하이브리드 교육의 평가는 “오프라인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기술적 질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모델이 교육의 공동체적 조건을 어떻게 재구성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특히 중등교육 단계에서는 학교가 단순한 고급 수업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화와 시민성 형성의 장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온라인 영재교육 모델은 콘텐츠 차원의 우수성과는 별개로 지속적인 규범적 검토가 필요하다.
5. 대학의 대학다움: 연구와 교육의 결합 문제
특히 미네르바에 대한 비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것이 단순히 온라인 수업을 한다는 점이 아니라 대학을 재정의하는 방식이다. Levine(2024)은 현대 대학의 핵심을 연구와 교육의 결합에 두며, 근대 대학은 지식의 생성과 전달을 한 제도 안에 묶은 독특한 설계라고 설명한다. 그녀의 논의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이 결합을 분리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연구-교육의 하이브리드 모델은 여전히 대학의 지속적 중심을 이루어 왔다.
이 기준에서 보면 미네르바는 교수법 혁신의 사례이면서 동시에 대학의 대학다움을 비켜가는 사례이기도 하다. 공식 자료는 학습과학, 데이터 기반 피드백, 능동적 세미나, 전이 가능한 사고틀을 강조하며, Thompson과 Amaral(2022)이 지적하듯 연구의 생성과 학문공동체보다 전이 가능한 기술(transferable skills)을 제도적 중심에 놓는다. 이때 대학은 점차 “지식을 둘러싼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필수적인 탐구 공동체”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글로벌 학습플랫폼으로 변모한다.
물론 이는 전통적 대학 모델을 무비판적으로 이상화하자는 뜻이 아니다. 전통적 대학 역시 계층성, 배제, 경직성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산업수요와 학습성과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이유는, 대학이 사회가 아직 요구하지 않는 질문을 붙들고, 즉각적 효용을 넘어서는 지식을 보존하며, 기술·경제·정치의 방향 자체를 비판할 수 있는 드문 제도이기 때문이다. 만약 혁신대학이 연구와 교육의 결합, 학문공동체의 형성, 공적 비판기능을 충분히 대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대학”이라기보다 “고도화된 교육서비스 기관”에 가까워질 수 있다.
IV. 결론: '혁신교육'이 아니라, '교육혁신'이 필요하다
이상의 논의는 스탠퍼드 OHS, 미네르바대학교, 태재대학교를 단순히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 기관은 기존 학교체제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 그리고 새로운 교육형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실험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평가는 찬양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 본고가 제기한 핵심 문제는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혁신교육기관들은 종종 혁신의 종착점, 즉 자신들이 궁극적으로 어떤 공적 질서를 지향하는지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 세계시민성과 평등의 언어는 소수 선발과 높은 비용, 제한된 접근성이라는 제도 현실과 긴장한다. 셋째, 역량 중심 담론은 인간을 비판적 시민보다 고급 적응주체로 재구성할 위험이 있다. 넷째, 온라인·하이브리드 모델과 플랫폼화는 공동체와 대학성의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 채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혁신교육에 대한 단순한 찬반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혁신의 공공화이다. 하이브리드 교육모델, 소규모 토론수업, 자기주도적 학습, 세계적 이동성과 프로젝트 기반 경험은 사립 엘리트 기관의 전유물로 남아서는 안 된다. 국가와 공적 제도는 이러한 요소들을 보다 넓은 교육체제 안에서 재구성하고, 동시에 정보공개, 접근성, 학생 참여 거버넌스, 공적 검증, 연구기능 보장, 형평성 확보를 동반하는 방식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혁신적인 학교 몇 곳”이 아니라, 공공성과 민주성을 갖춘 교육혁신의 체제화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혁신의 매혹이다. 새로운 플랫폼, 새로운 수업법,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도시 순환 모델은 손쉽게 감탄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교육은 감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교육은 언제나 물어야 한다. 이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를 배제하는가. 어떤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가. 어떤 사회를 상상하는가. 이 질문을 통과하지 못한 혁신은 교육의 미래가 아니라, 교육의 또 다른 신화에 불과하다.
V. 제언: 국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상의 논의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문제는 특정 혁신대학이나 실험학교의 성패를 개별 기관의 문제로 남겨두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공적 교육체제가 그동안 사적 실험에 위탁해 온 과제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수용하고, 동시에 그 실험들이 노출한 엘리트주의와 폐쇄성, 기능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공공적 기준 아래 통제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다시 말해, 필요한 것은 “혁신교육기관 몇 곳의 성공”이 아니라 교육혁신의 공공화와 보편화이다. 국회가 해야 할 일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재정 논의가 교원 수급이나 단기적 행정조정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학습형태의 전환, 고등교육 접근성, 학생참여 거버넌스, 새로운 교수·학습 모델의 공적 확산이라는 구조적 과제에 보다 과감하게 투자될 필요가 있다.
첫째, 고등교육법 체계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현행 고등교육법은 여전히 학교 유형 가운데 원격대학을 별도의 범주로 두고 있다. 이 구분은 원격교육이 예외적 형식이었던 시기에는 일정한 의미를 가졌으나, 온라인·대면·이동형·프로젝트형 학습이 복합적으로 결합되는 현재의 교육환경에서는 점차 경직된 분류가 되고 있다. 따라서 국회는 원격대학과 일반대학의 이분법적 구분을 단순 존치하기보다, 일정한 질 보장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하이브리드형 대학 모델을 제도적으로 폭넓게 인정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법체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규제의 초점은 “어느 유형의 학교인가”가 아니라 “어떠한 공공성·질 관리·학습성과·학생권 보장 체계를 갖추고 있는가”에 맞추어져야 한다.
둘째, 장학 및 학비지원 체계의 유형중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하이브리드형·소규모 혁신대학의 학생들이 제도적 회색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장학사업의 지원 기준을 학교 유형보다 학생의 사회경제적 필요와 교육기회의 공정성에 더 밀착되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혁신의 비용이 개별 학습자에게 과도하게 전가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셋째, 사립 중심 혁신기관의 공공성 조건을 강화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본고가 비판한 혁신교육기관들의 핵심 문제는 단지 수업방식이 아니라, 보편성과 개방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소수 선발과 고비용 구조 위에서 운영된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 과제는 이러한 모델을 무조건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재정지원·규제완화·제도적 실험을 허용하는 대신, 정보공개·형평성 지표·지역사회 연계·학점교류·교육과정 개방·학생권 보장 같은 공공성 조건을 강하게 부과하는 방향으로 법제화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사립형 혁신대학의 단순 확장이 아니라, 그 혁신요소가 공공 시스템 안에서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조건부 공영화” 혹은 “공공적 보편화”의 발상이다.
넷째, 대학 거버넌스의 학생참여를 실질화해야 한다. 현행 고등교육법은 대학평의원회를 교원·직원·조교·학생 등이 참여하는 기구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 기구의 입법 취지도 대학 운영과 교육의 중요사항에 대해 다양한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의사결정의 민주성을 높이려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 제도는 학생 참여의 원칙을 선언하는 수준에 머무를 뿐, 학생 대표성이 실질적 영향력을 갖도록 강제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국회는 대학평의원회 내 학생위원의 최소 비율을 법률로 상향하거나, 학교법인 이사회에 학생이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대표성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을 학생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아니라 학생이 함께 “구성”하는 공적 실천으로 전환하는 문제이다.
다섯째, 국가교육위원회의 학생·청년 참여를 양적·질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현행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국회 추천 위원에 학생 또는 청년 2명 이상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학생·청년 참여의 최소한을 법률에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과 청년이 국가교육 거버넌스에서 갖는 비중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현재 국교위 내 학생위원은 아무도 없으며, 국가교육위원회 스스로도 최근 국민참여위원회 등에서 학생·청년 비율을 16%에서 30%로 높이겠다는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국회는 이러한 흐름을 보다 제도화하여, 학생·청년이 단지 상징적으로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의제설정과 숙의, 정책평가 과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수 확대와 절차 개선을 논의해야 한다.
여섯째, 대입과 고등교육 선발체계 전반에서 비정량 요소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혁신교육기관들이 강조하는 자기주도성, 토론역량, 문제설정 능력, 공공적 책임감, 협업과 리더십은 단일한 정량지표만으로 온전히 파악되기 어렵다. 따라서 전국 대학의 입학사정에서 정량점수 중심주의를 완화하고, 비정량 요소를 다시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의 불투명한 정성평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기준의 공개, 다면평가 절차의 표준화, 사교육 유발 가능성 통제, 평가결과에 대한 설명가능성을 함께 높이는 방식으로 공정하고 검증 가능한 정성평가 체제를 설계하는 것이다. 교육혁신은 선발혁신 없이 완결될 수 없다.
끝으로, 보다 장기적인 과제도 있다. 국회와 공공정책은 더 이상 “학교가 곧 교육”이라는 전제를 당연한 것으로 둘 수 없다. 이반 일리치가 말한 탈학교화의 급진적 문제제기를 문자 그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의 사실만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곧, 미래의 교육은 반드시 전통적 학교제도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학습은 학교 밖의 디지털 공간, 지역사회, 일터, 시민사회, 국제적 네트워크 속으로 더욱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국회의 역할은 모든 교육문제를 학교 하나에 과잉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안팎을 가로지르는 학습생태계를 어떻게 공공적으로 조직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것은 “혁신교육”에 대한 박수갈채가 아니라, 학교를 넘어서는 교육생태계 전체에 대한 공적 설계이다.
요컨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몇몇 혁신대학의 성공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는 이들 기관이 제기한 문제를 사적 실험의 차원에 방치하지 않고, 공공적 제도혁신의 과제로 번역해야 한다. 그래야만 혁신은 특권적 엘리트의 장식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육질서의 재구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상으로 졸고를 마친다.
[끝]
| 오늘의 귀한 자리를 만들어주시고 부족한 생각을 강단에 올려주신 최형두 의원님과, 졸고 검토에 도움을 주신 하늘·성원·수인·혜인·지민·사은·영진을 비롯한 태재대 동료 학생들, 그리고 늘 학문의 렌즈를 바탕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보는 법을 알려주신 유성상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울러 이 글은 태재대학교 및 본교 학생회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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