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사이 만물의 무리 중 가장 존귀한 것이 오직 인간이다.
그 까닭은 바로 오륜이다.
天地之間 萬物之衆, 惟人 最貴.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유인 최귀라.
所貴乎人者, 以其有五倫也.
소귀호인자는 이기유오륜야니라.
- 박세무·민제인, 「동몽선습」 (童蒙先習) <수편> (首篇)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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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이 갖는 의의
「동몽선습」의 제목을 풀이하면 '어린이(동몽童蒙) 가 공부해야 할 첫 번째 것(선습先習)'이다. 즉 아동용 교과서로, 천자문을 갓 떼고 난 후의 학동들의 첫 책으로 사용되었다. 그렇기에 당시 사회의 근본 질서가 되었던 유교적 가치인 '오륜五倫'*의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이의 당위성을 설파하며 아동들로 하여금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나야 한다는 얘기가 주가 된다. 지금 오륜의 위치는 어떠한가? 봉건적 질서를 옹호하는 구시대적이고 지루한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유교적이다' 란 말은 '수구적이다'란 말과 거의 동치로 취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책의 구절을 가져온 데는 이유가 있다.
* 오륜五倫은 「맹자」 <등문공 상> 편에서 맹자께서 진상陳相과 대화하는 도중에 처음 언급되는데, 순임금 시대에 신하 설契을 지금의 교육부장관 격으로 삼아 사람 된 도리; 즉 인륜을 가르치도록 했다는 일화에서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부자유친(父子有親: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 부부유별(夫婦有別: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붕우유신(朋友有信: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다.
군신유의, 장유유서 등을 배우기 전 전제로서 맨 처음 배우는, 즉 인륜의 '기초 중의 기초'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인간존중' 이었다. 즉 사람이 배워야 할 첫 번째 내용은 바로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고 자신 스스로가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오륜은 변한다. 맹자가 오륜을 언급한 지가 어언 2천 300여년이 되었고, 「동몽선습」이 나온 지도 600여 년이다. 더 이상 「동몽선습」은 보편적인 교과서로서 읽히지 않으며, 사회는 오륜을 절대적 가치로 추앙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전제가 되는 유구하고 경외로운 진리, 인간존중의 원리는 그동안 변치 않고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을 지속하기 위한 첫째 가치, '너와 우리를 존중하고 내가 존중받는 존재임을 알라'는 가치는 체제와 문화를 불문하고 살아남았다. 지금 시대의 우리 아이들을 교육함에 있어 이 가치가 갖는 의의는 매우 크다.
인간이 귀한 까닭을 오륜이 있기 때문이라 얘기하는 이유 역시 배경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당위가 있다. (흔히 유교적 질서를 얘기할 때 '삼강오륜'이라 붙여 말하는 경우가 많으나 삼강과 오륜은 명확히 다른 개념이다. *)
* 삼강은 유가의 문헌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삼강은 한나라 동중서董仲舒의 「춘추번로春秋繁露」에 처음으로 나오는데, 그 내용이 각각 군위신강(君爲臣綱: 신하는 임금을 섬겨야 한다), 부위자강父爲子綱(아들은 아버지를 섬겨야 한다), 부위부강夫爲婦綱(아내는 남편을 섬겨야 한다)이다. 이는 신하와 자식, 부인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조하는 일방적인 윤리이기 때문에 인륜의 상호성을 강조하는 오륜과는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 (전통문화연구회의 역주를 참고)
오륜은 인간관계의 질서, 즉 인륜人倫 중에 있는 것이고, 인륜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가치다. 「맹자」에서 오륜을 설명할 때도 일방적인 복종이 아니라 쌍무적인 가치로서 언급되었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자식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또한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신 관계나 부부 관계 그리고 형제 관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특히 "붕우보인朋友輔仁" 이란 구절이 나오는데, 붕우관계에서는 친구를 사귀는 목적이 仁을 보조하는 데 있다고 밝힘으로써 친구를 사귀는 목적은 서로의 인격을 보완하기 위함이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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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저자 박세무 (朴世茂, 1487~1564) | 저자 민제인 (閔齊仁, 1493~1549) | 추사 김정희가 쓴 『동몽선습』. (25.0×14.0cm, 개인 소장) |
「동몽선습」은 조선 중기 문신인 소요당消遙堂 박세무와 임압立巖 민제인이 1543년경 저술한 아동 학습서다. 초학 아동들이 「천자문」을 뗀 다음 반드시 배웠던 대표적인 교과서였으며, 민간에서뿐만 아니라 조선 왕실에서 왕세자의 교육용으로도 활용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전국 단위로 사용된 세계 최초의 보편적 교과서로 평가되기도 한다. 기본서로는 매우 드물게 이 책은 1759년(영조 35년) 영조가 직접 쓴 어제서문御製序文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발문을 실어 다시금 출판되었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 책이 조정과 사림으로부터 높은 학술적 평가를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은 크게 유학의 핵심 윤리인 오륜五倫에 관한 부분과 중국·한국의 역사에 대한 서술 양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오륜의 각 내용인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중요성에 관해 각 편으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총론에서는 오륜은 하늘이 인간에 부여한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품성이라는 사실과 함께, 오륜의 근원은 효행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 역사에 관한 부분에는 고대 중국~명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중국사와 간단한 한국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가 비록 국토는 좁지만, 예악禮樂과 문물이 중국에 비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 아동들로 하여금 자국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은 성리학이 조선사회에 토착화되던 당시 사회에서 사림들이 지녔던 아동 교육관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 <總論> 편, "我國이 雖僻在海隅하여" ~ "稱之曰小中華라하니 玆豈非箕子之遺化耶리오"
이 책의 최초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다른 설이 존재하는데, 현존하는 1543년의 평안도 감영본, 「중종실록」의 중종 39년 기록, 노수신盧守愼의 「박세무묘갈명朴世茂墓碣銘」과 송시열의 발문 등의 자료들을 종합해볼 때 박세무와 민제인 등이 이 책의 저자라고 봄이 가장 타당하다. 특히 1543년 평안도 감영본의 윤인서尹仁恕 발문을 통해서 당시 평양 감사였던 민제인이 동지들과 함께 저술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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