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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소식

최근 정부의 취학 연령 하향과 학제 개편 시도에 관하여...

by Teddybear 202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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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정부의 취학 연령 하향과 학제 개편 시도에 관하여... >

 근래 몇 주간 일어난 취학 연령 하향과 학제 개편 관련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허나 지금 맡고 있는 청소년특별회의 부의장직은 정치적 중립이 엄격히 요구되는 직이기에, 논란이 뜨거울 적에 이러한 이슈를 언급하기가 어려워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했고 상당히 아쉬웠다.
 그래도 교육주체로서, 또 주체 중심 교육정책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사람으로서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한 번 꼭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 요약 : 만 5세 입학과 학제 개편은 필요하다. 허나 그 방식과 절차가 심히 잘못되었다.

 

 온 교육인이 합심하여 이 문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보니, 대중을 중심으로 입학 연령 하향 절차나 하향의 영향보다도 ‘입학연령을 낮추는 것’ 그 자체에 반대하는 현상이 있었다. 대중은 여론의 통제하에 있으므로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비판해야 할 지점은 ‘만 5세부터 학교에 간다’는 정책의 개요에 대한 것보다도 ‘학교는 만 5세를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즉 ‘학교에 보내두고 나서는 어쩔 것이냐?’에 관한 정부 차원 계획의 전무함 쪽이라 생각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명확한 계획을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중구난방식으로 여러 가지를 막 펼쳐뒀다는 게 정확하겠다.), 국회토론회나 기자회견 등에서 나타난 만 5세 입학의 형태는 대부분 ‘일반적인 교실에서 일반적인 교육을 받는다’로 인지되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정략적인 이유로 이러한 인지 고착화가 부추겨지는 경향도 보였다.

 

- 목적의 부적절함: 정부의 논리가 이렇게 빈약해서야 되겠는가?

 

 교원 수급이나 교실 확충 등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도 명확한 비판점이 있다. 바로 '근본이 없다'는 것이다. 즉 정책 추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목적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

 

 정부는 만 5세 입학의 목적을 ‘신속한 노동력 양성’과 ‘교육격차 해소’로 설정했다. 노동력 양성 쪽은 큰 의미가 없다. 출생인구 추세에 변동이 있지 않은 이상 결국 일시적인 효과만 만들 뿐이다. 또 양질의 일자리와 적정 수준의 노동환경 마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노동기간을 확장한다 한들 잉여 인력만 만들어내는 꼴이 된다.

 

 교육격차 해소 면은 반반이다. (1) 공교육 위주 교육체계로의 변화는 사교육시장 억제 이외에는 어떤 정책적 답도 없음이 증명된 지 오래고, (2) 기존의 종일 돌봄이 없거나 미비한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에게는 역설적으로 ‘저녁에 학원을 보낸다’라는 선택지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실제로 좌우를 막론하고 정부 차원에서 실행한 여러 연구가 우리나라의 사교육 실시 연령이 영아기로 하향화됨을 지적하고 있는데, 취학연령 인하는 이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 정책의 미성숙함: 국민을 향한 봉사를 하기 전에, 일단 국민이 확고히 알아야 하는데...

 

 통상 ‘대격변’ 수준의 정책이 제안되어 정부나 국회로 입안, 실행을 앞두기까지는 못해도 6개월 이상 소요된다. 당장 그렇게 비판받던 국가교육회의의 대입 개편안 발표조차도 숙의에 3개월은 썼고, 2005년 정부 교육혁신위원회의 취학연령 인하 추진(2006년 최종 백지화됨) 과정에서도 많은 논의가 오갔다.

 

 헌데 이번 취학연령 하향 발표는 깜짝쇼처럼 진행되었다. 이것이 나라의 미래를 바꿀 중대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민이 알게 된 경로는 국민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통해서가 아니라 언론에 뿌려진 보도자료뿐이었다. 학계, 교원단체, 학부모단체, 심지어 재계 등 그 누구도 정부 정책으로 이러한 내용들이 추진될 것임을 알지 못했던 상태에서, 2019년생 이하 아이를 키우는 예비 취학생 학부모들에게 심대한 고민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들, 그리고 장차 이들의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어야 하는 교육인들, 그리고 이들과 연결되어있는 다른 국민들의 혼란 역시 당연지사다.

 

 이러한 혼란이 더욱 커진 데에는 정부 스스로가 그들의 계획에서 공론화나 대안 마련 등의 과정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로 무작정 ‘일단 연령부터 내리고 본다’라는 식의 불통을 보여준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만 5세 취학 자체는 드문드문 학계에서 논의되어왔던 정책이고 이미 여러 대안이 제시되었다. 따라서 적어도 정책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제시되었다면 ‘이 정책의 가부’를 놓고 따질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헌데 방법이 잘못되었으니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고, 가부를 따지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게 되었다.

 

- 반대 주장의 맹점: ‘취학연령 하향의 조건과 영향’에 대한 논의를 우선시해야 했다.
 
 ‘교육의 공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입학연령 하향도 추진 과정 등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으나, 처음에는 교육에 대한 공공의 바람직한 책무 이행의 선상에서 제안되었을 것이다.
정책 추진 자체가 굉장히 성급하게 진행되었다 보니 교육계의 합동 대응이 여론전 위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음은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 측의 주장 그 자체만 보자면 분명 맹점은 있다.
 
 입학연령 하향 반대의 주요 논지 중 하나는 “세계 대부분 국가들의 취학연령이 6세인데, 우리만 낮추는 것은 국제적으로 맞지 않다!”라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실제로 OECD 국가 대부분의 취학연령은 만 6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6세 취학의 예외로는 7세부터인 핀란드·스웨덴·에스토니아·러시아 등과 5-6세인 호주·독일·영국, 4세인 영국(지역별로 다름)·룩셈부르크와 3세인 프랑스·멕시코 등이 있다. 보다 보니 ‘교육선진국’으로 추앙받는 나라들이 있어 꽤 이상해보일 수 있다. 허나 이들 나라에는 이유가 있다.
 
 7세부터 살펴보자. 핀란드의 경우 0~5세까지는 주당 조건부 50시간, 6세 무조건부 20시간의 보편적인 무상 공교육(보육)을 제공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대개 무상으로 제공된다. 즉 태어난 직후부터 국가가 일정 부분 육아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고 있는 것이며, 6세는 ‘취학 전 준비기간’으로써의 역할을 한다.
 
 헌데 5세보다 낮은 곳은 뭘까? 이들 나라는 학부모 등 교육주체들의 반발이 더 컸어야 할 텐데 왜 안정적으로 안착한 것일까? 답을 먼저 얘기하자면 이들 나라는 유아교육이 학교교육으로 완전히 편입된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초등교육-중등교육’ 의 학제가 아니라 ‘유아교육-초등교육-중등교육’의 학제를 띠고 있는 것이다.
 
 취학연령이 3세로 가장 낮은 프랑스의 경우 0~2세에서는 보편적 보육이 제공되지 않고 있고, 그렇기에 학교의 기능이 커지다 ‘유아학교’로 독립했다. 유아학교는 의무 취학인 대신 기본적으로 24시간 이용이 보장되며 각 가정의 상황에 맞게 이용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선진국 중) 취학연령이 7세인 국가나 3세인 국가나 유아기에 무상(또는 저비용)으로 제공되는 교육·보육의 질은 비슷하지만, 이것의 의무 여부에 따라 국제적 수치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즉 국제 평균은 단순히 ‘의무냐, 아니냐’를 갖고만 따져진 것이기에 수치만 보고 국제적인 흐름에 맞지 않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라고 본다.
 
 
▷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루도 안 되어 전국 팔도를 단합하게 만든 본인의 업적(?)을 기념하는 것인지, 교육부장관이 취임 34일 만에, 또 30초의 말을 남기곤 사퇴했다. 사퇴 이후 이 사단은 일련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으나, 만 5세 취학의 정책적 효과에 대해 고민해볼 때 이것은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더 많은 논의를 통한 논리적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정부 차원에서의 임무는 아래와 같다.
 
① 진정 유아 사교육 열풍을 꺼뜨리고 국민의 교육비 부담을 덜고자 한다면 사립유치원과 사교육시장을 대상으로 한 강도 높은 제재를 실시하라. 현재 영어교육과 고비용 체험학습 등을 제공하는 곳은 바로 사립 유치원이며, ‘교육의 사유화’를 지향하는 사교육시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취학연령 하향은 그 방면의 개혁이 완수된 다음의 단계다.
 
② ‘만 5세 초등학교에 욱여넣기’가 아니라, ‘만 5세 유아학교’를 도입하고 준 의무화하라. 또한 유치원 이전 단계의 보육 영역에 대한 공공성을 제고하고 통합적 체계를 만들라. 이번 논쟁을 관통한 외침은 ‘만 5세와 만 6세의 발달단계가 현저히 다르다’라는 것이었다. 이 말인즉슨 학교가 발달단계에 걸맞는 교육을 제공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입학 연령 하향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고, 이것이 곧 유아학교다.
 
③ 정부는 무슨 일만 터지면 “국가교육위원회에서 해결해야...” 라 미루면서 이면에서는 단순 자문기구 수준으로 무력화하고 있는 이중적인 태세를 멈추고 국가교육위원회를 합의제 행정위원회답게 만들라.
 
 한창 열기가 뜨거울 때 한 토론회에서 영국에서 오랜 기간을 지내신 모 교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첫 마디가 가히 도발적이었다. “저는 입학 연령 하향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분위기가 술렁인다. 허나 그 다음 얘기를 들은 청중은 스스로의 불씨를 꺼뜨렸다. 본인 아이들은 만 4세에 초등학교(영국의 경우 1~6학년 이전에 K학년이 있다.)에 갔는데, K학년에서는 그 나이대 아동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 비형식적 학습체계가 잘 구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까 언급한 ‘학교가 발달단계에 걸맞은 교육을 제공한다는 전제’의 좋은 예시였다.
 
 사회적 투쟁의 끝은 어디어야 하는가? 참여한 이들의 내적인 성장이다.
 
 C. 메리엄은 1934년에 출간한 그의 명저 <정치권력론>에서 나치화되는 사회를 향해 ‘정치의 폭력화는 실정의 고백이다.’라 일갈한 바 있다. 세력화된 권력이 이성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절대적 정의이건, 무엇을 지향하건 간에 말이다.)
 
 정치논리가 짓밟을 수 없는 가치들이 분명히 있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튼튼하게 싸우는 쪽은 물렁한 덩어리가 밀려오면 잠시 눌릴 수는 있겠으나, 궁극에 다다르게 되면 이기고야 말 것이다.
 
 
< 참고자료 >
 
2022. 7. 29. 자 교육부 업무보고.
박창현. (2022). 만 5세 초등취학 학제개편의 쟁점과 과제, <윤석열 정부의 만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 철회를 위한 토론회> 자료집. p. 45-61.
유지연. (2019). 교육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가교육회의 공론화 논의의 쟁점 및 과제’.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제1536호.
OECD. (2015). <Starting Strong 4>
교육부·광주광역시교육청·육아정책연구소. (2015). OECD <Starting Strong 4>의 영유아교육보육 질 모니터링 中 표 1.1, p. 21-22.
육아정책연구소. (2010). 초등학교 취학연령 및 유아교육 체제 개편 연구 (2010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연구과제)
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 (2020). <2020 교육통계 분석자료집> 中 유·초·중등교육통계편.
2022. 08. 04. 국회의원 강득구 외 46인·만5세초등취학저지를위한범국민연대가 공동주최한 <윤석열 정부의 만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 철회를 위한 토론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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