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더불어민주당 대선·지선 평가 연속토론회]
- 일시: 2022. 06. 14.
- 장소: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
- 주최: 국회의원 강민정·권인숙·고영인·김성주·민병덕·백혜련·양이원영·윤영덕·이수진(비례)·이탄희·천준호
민주당, 내부혁신과 정치개혁이 최우선이다
- 촛불처럼 뜨겁게, 탄핵처럼 빠르게 -
곽노현 (前 서울시교육감, 前 국회를바꾸는사람들 대표)
만약 결선투표제가 있었더라면 이번 대선 결과가 어땠을까? 만약 안철수와 심상정이 이재명의 다당제 정치교체 제안을 받아들여 다당제 연합정권이 출범했더라면 지방선거 결과는 어땠을까?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법을 어떻게 고쳤을까? 이른바 검찰 수사·기소 분리 입법추진 여부를 당원투표에 부쳐 결정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구태여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그만큼 기존 선거제도나 정당제도, 그 제도개혁이 선거결과나 정치과정에 무시 못 할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국회법 등 정치법제는 그 규율대상이 주로 국회의원이나 소속정당이라는 점에서 과연 국회의원이나 소속정당이 정치법제의 제, 개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 합당한지 의문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법제는 주권자인 국민의 공익보다 입법자인 국회의원의 사익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왜곡되기 쉽지만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입법으로 보장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바로잡는 게 몹시 어렵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개혁이 말만 무성하고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공통의 구조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추첨시민의회 등 시민숙의기구나 중립적인 전문가심의기구를 통해 이런 구조적 한계를 돌파하는 제도혁신이 필수적인 이유다.
나는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을 얻은 집권여당 민주당이 체계적이고 일관된 구조개혁프로그램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 점을 민주당 대선패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2020년 총선압승으로 행정, 입법, 사법, 지방권력을 틀어쥔 민주당의 문재인 정권이 마지막 2년 동안 과감한 개혁입법과 개혁조치로 체감 가능한 구조개혁을 이뤄냄으로써 촛불혁명정부의 소임을 다하며 지지자들에게 정치효능감을 맛보게 했더라면 대선결과가 달랐을 것이다. 한마디로 당시 당정청 리더십에 큰 문제가 있었다. 문재인정권의 당정청 리더십의 안이한 현실진단과 정치대응이 불과 5년만의 대선패배를 초래한 근본요인이다. 선거공학에서 실패와 아쉬움은 부차적이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코로나손실보상처리문제, 남북관계합의서 국회비준문제, 전시작전권환수문제, 검찰개혁문제, 사법농단판사처리문제, 전교조법외노조문제, 국정원 불법사찰기록 처리문제, 공무원교사 정치기본권문제, 차별금지법 제정문제, 전국민고용보험법 제정문제, 플랫폼노동자보호입법 등에서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행동해서 체감 가능한 구조개혁을 성취했어야 했다. 2020년 정기국회와 2021년1,2월 임시국회가 최대의 개혁승부처로 삼고 여소야대국면에서 가로막혔던 100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과감한 입법프로그램과 개혁조치를 작동시켜서 대중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했어야 했다. 코로나 와중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권재창출을 위한 최고의 대선 전략이 될 것이었다.
현실적으로는 모든 게 지지부진했다. 거대여당 민주당은 보수언론이 걸어놓은 입법독주 프레임에 포획돼 메아리 없는 협치 타령에 동조하며 과감하고 단호한 행보를 하지 못했다. 정권 전체가 보수언론을 등에 업은 윤석열의 반발과 홍남기의 어깃장을 제압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다 그대로 대선정국으로 돌입하며 촛불개혁입법의 골든타임을 실기했다. 180석 의석으로 해묵은 개혁입법을 처리해서 우리사회에 형평수를 채워 넣을 호기를 놓쳤다. 결과적으로 부모님들의 단식투쟁으로 간신히 통과된 누더기 중대재해처벌법 통과와 국내노동법을 그대로 놔둔 채 진행된 ILO핵심조약 비준 빼고는 기억나는 입법투쟁이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선직후에 치러진 이번 지방선거에서조차 민주당(이재명후보)의 민생, 지역 대선공약이 전국 또는 권역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의 공통공약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지방선거에서 무게 있는 전국적, 권역적 공통공약 실종은 선거 전략으로도 문제가 있지만 민주당의 강령차원 의제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보기가 아닐 수 없다. 다당제 정치교체를 위한 정치개혁의 하나로서 기초의원선거에서 2인선거구를 없애고 3~5인 중대선거구로 가겠다고 공약했는데 지방선거에서 2인선거구를 그대로 놔두고 고작 11개의 4,5인 선거구를 늘렸을 뿐이었다. 결과는 기초의원선거에서도 거대양당 강화로 나타났다. 더 나빠졌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수도권 광역의원선거결과는 다시 한 번 민주당 90%에서 국힘당 70%로 크게 요동쳤지만 민주당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선방했다는 투다.
21대국회의 개막과 동시에 민주당은 위성정당금지, 국회의원 3선 제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강화 및 지방의회선거 적용, 지역정당 허용, 공무원교사의 근무시간 밖 정치기본권 보장, 16세부터 정당가입 허용과 교육감선거권 부여, 원외위원장에 대한 정치후원금모집 허용, 유권자에게 매년 1인1만원 정치후원바우처 제공 등 비례성과 대표성, 투명성 강화를 기치로 총체적 정치개혁몰이를 주도하며 시민사회의 적극적 호응을 이끌어내고 고에너지 민주정치의 토대를 만들어내는 일에 나섰어야했다. 다른 모든 영역과 분야에서 제도 틀을 설정하고 변경하는 게 정치의 본업이기 때문에 시민참여를 활성화하는 위와 같은 정치개혁만큼 다른 분야의 개혁추진에 두루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민주당은 개혁입법의 호기를 놓친 게 사실이다. 지금은 야당이라 주도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국회의 과반수 야당이라 입법추진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을 의식하며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소수 여당을 설득하고 타협하며 때로는 비타협적으로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해서 개혁입법을 다수당으로서 책임지고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지금에라도 개혁프로그램 정치에 적합하게 정당관행과 정당문화를 혁신하는 일에 나서야한다. 무엇보다도 일반당원들이 주요현안에 대해 학습, 연수, 토론, 조정할 수 있는 참여기회를 넘치게 제공해야 한다. 정당의 체질을 강령과 정책, 현안에 대한 학습과 연수, 토론 중심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의원실과 의원회관이 아니라 지구당사무실과 공공장소에서 활기 있는 현안 토론회가 열리면 좋겠다. 중대사안에 대해서는 253개 지역구에서 동시다발로 열릴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지금은 기후위기, 코로나위기, 인공지능위기, 경제양극화위기, 미중격돌과 북핵 위기 등이 중첩된 역사상 전례 없는 대위기시대다. 모든 분야에서 창의혁신 사고와 기존경계의 통융합, 혁신친화적 연대와 협력을 통해 사고와 실천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문명사적 대변혁의 시대다. 문제는 이와 같은 대위기와 대전환의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지금의 대의민주주의가 몹시 취약하다는 점이다. 껍데기는 민주주의이지만 들여다보면 어디서나 엘리트 과두지배가 관철되는 모습을 보인다. 정치분야에서도 사회경제분야 못지않게 그렇다. 종편 티비들과 유튜브방송, SNS로 정치고관여층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고 한편에선 팬덤정치가 극성을 부리지만 다른 한편에선 일반시민의 정치신뢰도와 정치효능감이 여전히 바닥을 친다.
분명한 점은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위기국면의 총체성과 심대성, 복잡성을 감안할 때 시민참여와 집단지성을 활성화해서 정치의 온도와 속도를 높이지 않고서는 기존의 취약한 민주주의마저 작동하지 않고 포퓰리즘이나 권위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시민참여 활성화로 여기저기 방전된 대의민주주의를 빵빵하게 충전해서 고강도 민주정치가 가능하도록 민주당이 정치개혁과 정당혁신에 앞장서야 한다. 촛불처럼 뜨겁고 탄핵처럼 빠르게 정치의 온도와 속도를 올려서 기존 사회제도를 대전환시대의 요구와 일반시민의 열망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적지 않은 경우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그게 살길이다. 과두지배의 비효율과 무책임을 막기 위해 의원특권을 내려놓는 구체적인 정치개혁조치와 거대양당의 특권을 내려놓는 정치법제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몇 가지만 예시하더라도 임명직 대의원제 폐지, 국회의원 4선 금지, 위성정당금지, 지방의원선거에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원외위원장 정치후원금 허용, 정당국고보조금 지급 시 지난3개월간 정당지지율 반영, 연간 1인1만원 정치후원바우처 제공 등이 정당내부민주주의와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당원발안권, 당원거부권, 당원소환권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민주당부터 모범적으로 채택,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고 정치의 온도와 속도를 높이는 정치개혁과 정치관계법 개정은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와 거대양당의 기득권 내려놓기가 핵심이기 때문에 양당소속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국회에 맡겨서는 팔이 안으로 굽는 해법밖에 나오지 않는다. 시민의회나 제3전문기구에 맡기고 그 안을 그대로 수용하는 정치개혁방법론 혁신이 필수적이다.
2024년 중간심판 총선에서 승리하고 다시 집권하기 위해 민주당은 문제해결력을 인정받는 종합적인 개혁입법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일반당원의 학습과 숙의, 발언과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모범적인 정당민주주의를 선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개혁과 정치관계법에 대한 국회와 국회의원의 이해충돌요소를 없애기 위해 시민의회나 공론조사, 시민배심원 등 다양한 시민숙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민발안권, 국민거부권, 국민소환권 등 일반시민의 직접민주주의적 정치참여기회를 확대하고 대의민주주의를 보다 민주화하는 정치개혁에 민주당이 앞장서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민주당이 대위기시대와 대전환시대에 민주적 실험주의에 충실한 구조개혁정당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지선 평가 연속토론회 (2022. 06. 08. / 06. 14. / 06. 17. - 사진 양이원영 의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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