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관어 : 대학입시, 경쟁, 수능, 정시, 수시, 입시 공정성 논쟁,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교육과정, 협력, 학교밖청소년, 중등교육 통로화
김 경 훈 (2005년생, 경남 창원 마산가포고등학교) 청소년특별회의 위원 (2020) / 교육분과장 (2021) 국가교육회의 어린이·청소년 100인회의 의장 (2019~2020) “백 년을 가야 할 교육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들의 진중한 외침이 굳은 사회에 파동이 되어, 소외나 과중이 없이 모든 세대가 융합해 행복한 교육을 만들 수 있기를 절실히 바라왔습니다. 오늘의 이 자리와 이 자리가 있기까지의 많은 조화들이 그 초석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저희의 미숙함이 있더라도 부디 저희 스스로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불가피한 성장통으로 이해해주시고, 넓은 마음을 베풀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함께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와 사랑,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의 뜨거운 눈물을 전합니다. |
저는 김경훈입니다. 경남 창원의 일반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고, 올해로 열여덟이 되었습니다.
1. 여는 글
청소년의 자살율이 올라가고, 학업만족도가 떨어지고, 성인기 국민의 (비교적) 낮은 실질문해율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 지역소멸 그리고 그로 인한 지방대학의 ‘멸망’, 혹은 그 역은 필연적인 과정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 청소년들의 탓이 아님은 모든 교육인들이 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대부분 잘 모르거나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오늘 극단 중 하나를 중론인 양 택하고자 나온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얘기로 돌아가, ‘학생-청소년 스스로들이 경쟁 그 자체를 합리화’하며 강고해지는 작금의 경쟁 구도에 관해 사회에 따끔한 일침을 놓고, 기성세대 입장에서 조금 외람되게 느껴지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감 없이 이 사회에 외치고자 한다.
또 그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 나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에 이 사회에 유감을 표한다.
2. 입시에 종속된 우리의 삶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사하는 청소년보다 자살하는 청소년이 더 많다. 무언의 주검에게 목숨보다 더 두려운 것이 무어냐고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청소년 3분의 1은 심각한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고 그중 목숨을 끊는 이들이 나온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들에게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니 가장 큰 것이 학업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 결과 자체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사회가 이러한 결과를 대하는 것이 너무도 익숙해져서 그냥 그런 줄 안다는 것이다. 배움은 즐거워야 하는데, 사회에서 넣어준 탈 있는 배움 때문에 나머지 모든 가능성조차 스스로 닫아버리는 것을.
- 수능은 그 자체로 문제가 많다.
정치, 지리, 경제, 문화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수능에서는 분포로 말할 수 있다. 생활과 윤리, 사회·문화는 문과의 60% 가량이 응시하지만 경제는 2%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점수 따기 쉽다는 인식이 꾸준히 쌓여왔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건 말건 점수 따기 쉬운 쪽으로 간다.
미래를 위해 자기주도성이 필요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정작 철학과 논리학으로 대변되는 생각 그 자체의 학문들과 비주요과목은 수능에 없다는 이유, 또 암기 위주의 교육과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개설조차 되지 않는 학교가 많다.
즉, 입시에 종속된 교육과정이 골라먹기식 수능의 악영향만을 극대화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관심사를 향한 도전보다는 보신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90년대부터 지적되어왔음에도 적극적 교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교학점제도 모두 허상이 되었다. 새 체제 하에서 그저 교사의 일 늘이기, 학부모의 꼬인 걱정 만드는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수능에 수십 수백 과목을 개설하지 않는 이상 고교학점제와 정시 확대는 절대 공존할 수 없다.
- 같은 원리 하에서 크게 다를 것 없는 입시제도
사교육비 증가를 두고 이게 정시 확대 때문이니 수시 확대 때문이니 서로가 싸우고 있으나, 결국 정시건 수시건 돈 많고 서울 살고 일명 ‘명문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유리하다.
즉 서열화와 경쟁의 원리 속에서 수시도 다르지 않다. 3학년 1학기만 잘 살면 땡이라는 풍조가 만연하고, 학생의 생활을 사실대로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생활기록부는 오히려 역으로 학생의 삶을 옥죄는 도구가 되었다.
와중에 적성고사와 논술이 없어졌다. 수상실적과 독서활동란이 무용이 되었다. 결국 자기소개서조차 ‘불공정’을 이유로 없어져버렸다. 지금 우리를 소개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점수뿐이다. 그놈의 성적, 성적. 고성적 학생에게 생기부 텍스트 몰아주는 관행도 이러한 입시흐름 때문에 나아지긴커녕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의도된 공정’ 이란 말인가?
어찌어찌 성적과 생기부 잘 맞춰 성공하면 모르겠지만, 성공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고등학교 3년도 모자라 반수나 재수해서 대학 가면 된다며 청년기까지도 연 1회뿐인 이벤트에 걸게 되고 그것을 스스로 합리화한다. 끔찍하다. 그 이벤트마저도 또다른 아이들과 피터지게 경쟁해야 하는 데스게임이다.
가장 무서운 동시에 안타까운 것은, 그런 구조가 너무도 굳건하여 거의 모든 청소년들이 자신의 문제의식을 이끌어내는 것조차도 두려워하다 결국 기성세대가 되어 이를 자식 세대로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는 나조차도 지금 같은 입장에 있다.
- 교육의 음지, 학교밖청소년 정책
학교 안도 난리지만 학교밖은 논의조차 없다. 1년에 학교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이 5만 명이나 된다. 나중에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 가량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들을 위한 정책은 부실하기가 그지없다.
일례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할 수 없는 학교밖청소년을 위해 <청소년생활기록부>가 도입되었으나, 이것의 존재를 아는 이들도 적고 잘 반영되지도 않는다. 작년 교육부에 이같은 내용을 개선해야 한다고 정책제안을 했더니 이미 법에 ‘교과성적외의 자료 등’ 으로 반영 근거가 있으니 문제없다는 답을 받았다. 법적인 근거도 있고, 반영 대학도 있긴 하다. 그러나 429개 대학 중에 고작 6개뿐(*4)인 것이 답답한 현실이다.
(*4) ‘청소년생기부 '유명무실'…학교 밖 청소년 대학수시 지원 꿈 멀어지나’, 2021. 09. 17. 시사저널.
관할 부처의 다름(*5) 등으로 인해 비교내신 불균형 문제(*6) 등 산재한 다른 문제들은 접근조차 힘든 것이 현실이다. 튼튼하고 체계적인 청사진 없이 모든 것을 과도하게 기관 자율에만 맡기면 결국 교육의 시장화와 우열의 극단화로 인해 이러한 ‘교육의 음지’가 더 커질 뿐이다.
(*5) * 학교밖청소년 지원제도는 현재 입시 관련 사항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가족부의 소관이다. (범)청소년계에서 최근 대선 후보들에게 주무 일체를 교육부로 이전하는 것을 건의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교육계에서는 교육부 폐지론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은 부처 간 힘겨루기로 인한 정책수요자의 혼란과 피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6) * 현행 입시제도에서 학교 밖 청소년 등이 학생부 교과전형에 응시할 때는 ‘비교내신 환산’을 통해 내신 성적을 대체한다. 비교내신은 주로 ‘검정고시 성적’을 대학 자체환산표에 대입해 산출하나, 현행 대입에서는 각 대학마다 환산 체계를 자율적으로 정하여 시행하고 있어 각 단위학교마다 환산 기준에 대한 공정성/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2021 청소년특별회의 교육분과 정책제안서에서 발췌.)
3. 고등교육의 본질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궁극적으로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이런 난관을 거쳐서라도 대학에 가는가?’ 혹은, ‘이렇게 대학을 가서 무언갈 얻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배움이 곧 밥이었다. 이전 세대에서 각고의 노력을 통해 끌어올린 대학교육 이수율은 현재 OECD 국가 중 1위(*7)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질적 개선이 담보되지 않은 대학교육의 양적 팽창으로 인해 대학 학위 취득은 취업을 위한 과제 내지 사회화를 위한 필수 코스가 되었고, 90%에 이르는 사립대학 비율(*8)은 국가균형발전 중추로서의 고등교육의 역할과 공공성을 약화했다.
(*7) 25~34세에서 69.8%. / Population with tertiary education(Age 25~34) - Datas, (2019), OECD.
(*8) 2017년 기준 85.8%. / 대교연 통계 2017-18 14호, (2018), 대학교육연구소. - 2017 교육통계연보(2018, 교육부)를 인용함.
<그림> 대학에 진학한 가장 중요한 이유 (*9) |
<그림> 한국 사회에서 4년제 종합대학 학사학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10) |
(*9) 조사기관 :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 조사기간 : 2019. 6. 18. ~ 6. 21. / 조사대상 : 전국 19~54세 남녀 / N=1000.
(*10) (*9)와 동일한 조사, N=621.
그렇게 일단 대학으로 보내고 보는 사회가 되었지만, 정작 취업 과정에서의 주체성과 취업 이후 만족도는 대학 학위 취득과 비례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 직업인의 8%만이 학창 시절의 꿈을 이루며, 10명 중 6명은 자신의 학창 시절 장래희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직업을 택했다. (*11)
(*11) ‘직장인 5명 중 3명, 희망하던 것과 다른 직업 가져...’ 2020. 8. 27. 아시아에이. / 조사기관 : 벼룩시장구인구직 / 조사대상 : 전국 직장인 / N=1943.
목표 없는 대학진학을 최대한 줄이고 개인의 적성에 맞는 직업선택 지원을 위해 정부에서는 각종 특수목적고등학교, 특성화고등학교(1998, 2012), 마이스터고등학교(2008) 등을 추가 설치·전폭 지원했으나 그 반작용으로 이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대학 말고는 보낼 곳이 없어져 버렸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현재 대다수 지역에서 일반고생의 80% 이상, 일부 지역에서는 90%까지도 대학으로 간다.
<그림> 지역별 일반고 재학생의 대학(전문대학 포함) 진학 비율. (*12) |
(*12)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 (2021. 09.)
즉 중등교육기관이 일종의 진학용 통로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이렇게 정의와 본질이 다른 대학에 ‘일단 가는 것’에 맞춰진 지금 입시제도는 그 근본에서 서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즉 작금의 기형적 진학구조에서는 죽어라 한쪽의 입시를 파고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택할 수도 없고, 자신에게 맞는 대학으로 가기도 어려우며, 대학 학위를 가지고도 무조건 원하는 직업을 얻을 수 없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감히 단언한다. 지금의 암기와 선발 위주 교육 하에서 우리가 아침부터 밤늦도록 씨름하는 내용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동료 간 담판은 교육의 본기능 실현을 향한 것이 아니라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데만 필요한 것이다.
즉 성적에 그토록 민감한 학부모들과 성적위주사회를 방관하고 있는 시장적 교육, 그리고 그러한 세태를 뒷받침하는 구시대적 제도의 목적과 목표는 우리의 지적·인격적 성숙이 아니라 ‘검증된’ 일류 학교에 들어가 장래의 사회적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도록 만들려는 데 있는 것이다.
4. 결 론
대한민국 교육의 가장 근본 가치인 ‘모든 아이를 위한 교육’은 어디로 갔는가….
지금 이 사회의 정책결정자들에게 여쭙고자 한다.
아이들을 더욱 철저하게 탈락시키고 남은 아이들에게 위태로운 안도감을 주는 지금의 흐름이 과연 공정한 것이며, 개혁적인가?
우리는 온전한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평화롭고 평등한 교육환경을 원한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너는 왜 사람을 살리고 싶니?” 하고 물어봐야지, “너 몇 등급 나오니? 전교에서 몇 등은 들겠지?” 하고 물어보지 않는 세상.
어떤 합리적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짓밟아야 하는 끔찍한 증오와 ‘가짜 적자생존’의 굴레에서 벗어나 친구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세상, 사랑하는 이를 사랑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다.
결론적으로 고등교육체제에 관한 우리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1. 정시 확대는 절대 공정성 논쟁의 명답이 될 수 없다.
1. 수능에 종속된 교육과정 및 수능 그 자체의 시급한 개편이 필요하다.
1. 지금 우리의 삶에 기반하여 고등교육(기관/제도) 전반의 공공성(공영성)을 제고해야 한다.
1. 입시에서의 ‘진짜 공정’은 지금의 교육적 음지를 개간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1. 지금까지의 분절적이고 정략적인 논의를 넘어 ‘왜 교육의 모든 것은 경쟁에 종속되었는가’에 관해 무겁게 논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과열된 논제에 둘 중 하나의 것을 공약으로 설정하여 대안 없이 방향을 꼬아두고 ‘국가교육위로 전권 이관하겠다’는 것은 대책이 아니다. 이는 진정한 ‘대전환’을 막는 구조적 모순이며, 교육에 대한 방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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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우리가 어른이 되길 기다린다는 것을 알 새도 없이, 우리는 지금 죽고 있습니다.
이 발제문을 쓰며 친구들 생각에 울컥하는 마음이 많이 치받쳤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항상 울적함을 갖고 사는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논리정연하게 풀어가고 싶었으나 부족한 제 능력과 짧은 준비 기간으로 인해 제대로 마치지 못한듯하여 많이 아쉽습니다. 부디 제 글이 여러분께 단순한 감정적 호소 이상의 무언가로 다가왔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 특히 밤낮 가림없이 고생 많았던 우리 팀원들과 물심양면 지원해주신 윤우현 선생님, 강민정·곽노현·유기홍 선생님과 보좌진 선생님들, 이번 발제 검토에 많은 도움을 주신 하윤 누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부족한 발제를 마칩니다.
2022. 02. 15.
김 경 훈
>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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