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 잘못 없는 학생인권조례를 지켜주십시오! > (2023. 03. 22.)
늘 선진 의정활동에 힘써주시는 의원님들, 그리고 서울시민 여러분. 저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열아홉 학생입니다. 최근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십여 년이 넘게 지금의 학교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학생으로서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많이 부족한 생각으로나마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보고자, 저녁 시간 급히 쓴 글을 이곳에 올립니다.
1.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
보호받는 것의 본질은 권리, 나아가 기본적 존엄의 침해가 합당하다는 것과 동치가 아닙니다. 우리 헌법이 전제하는 인간상은 ‘존엄성을 가진 인격적 주체로서 자율적으로 삶을 결정하고 형성해 나갈 줄 아는 동시에 사회공동체에 적응할 줄 아는 사람’인즉, 보호받는 이가 삶의 주체임을 인정함이 바로 보호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의 실현을 막는 ‘보호의 오·남용’은 장려되지 않고, 오히려 국가권력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고, 또 지속적으로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보호의 실현을 위한 개념인 교육권과 양육권의 본 목적이 부모와 교사의 이익보다는 학생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실질적 보호'를 추구하는 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것은 보호 수준의 향상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합니다.
2. 학생인권이 증진되면 교권이 침해된다?
교권은 왜 침해되어 왔습니까? 국가가 교직에 대한 비전을 정책으로 제시하지 못했기에, 사교육 폭증으로 교사에 대한 신뢰성이 감소했기에, 대중의 대화와 미디어 속 공공연히 교사가 무시되어 왔기 때문임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사람 대 사람 간의 기본적인 존중을 무시한 폭력적 지도권을 교권의 전체인 양 호도하고, 직접적인 이유는 던져놓고 애꿎은 학생인권만 탓하며 교육주체들을 싸움닭처럼 만들면 학생도 교사도 더욱 말라비틀어질 뿐입니다.
참된 의미의 교권이 더욱 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에는 학생 대다수가 동의할 것입니다. 교권이 필요한 만큼 학생인권도 필요합니다. 인권은 어느 한쪽이 보장되면 어느 한쪽이 뺏기는 제로섬의 개념이 아니며, '당연히 주어진 것'인 인권을 가져갈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존중받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이어야만 타인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권 강화와 학생인권 강화는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며, 잘 설계된 법적 틀과 효과적 이행 속에서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3. 학생인권조례가 있으면 학력이 떨어진다?
이는 학생들의 학업과 연결시켜 어떻게든 '그럴듯한 폄훼'를 이끌어내기 위한 허위와 과장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학생인권조례 제정 지역의 대수능 평균 표준점수는 국어·영어·수학 모두 미제정 지역에 비해 높습니다. 당해 성적 원점수 및 전해 성적 대비 향상폭 등 다른 기준에서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기초학력 성적을 놓고 봐도 제정 지역이 전국 평균에 비해 특별히 더 큰 하락폭을 보이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4. 학생인권조례가 있으면 청소년 범죄율이 높아진다?
역시 명백한 허위입니다.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학생인권조례 제정 지역의 청소년 범죄율은 미제정 지역의 비율보다 평균 7%p 낮으며, 제정하지 않았다 제정한 지역에서는 청소년 범죄율이 상당 부분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특히 서울특별시는 제정 시점(2012)과 최근(2021) 사이 56% 감소하여, 동시기 인권조례를 제정한 광주에 이은 2위의 범죄율 감소폭을 보였습니다. 인권조례의 모든 내용은 나의 행동을 더욱 잘 이해하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자고 말합니다. 이러한 존중의식의 함양이 범죄율을 높인다는 주장은 비논리적 허구일 뿐입니다.
5. 학생인권조례는 선언적 문장들의 집합에 불과하므로 의미가 없다?
맞습니다. 작금의 인권조례는 선언적 측면이 크며, 구속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헌데 이것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더욱 실질적이고 강력하게 조례를 만들어가자는 존치 측의 요구에 결사를 운운하며 거부하고, 조례를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헐뜯으며 효과적 이행을 방해하던 일부 이들로 인해서입니다. 또한 그런 선언적 측면에서의 조례이나마 가시적인 효과를 만들어왔습니다. 서울시교육청(2020)에 따르면 조례 정착기인 2015년 22.7%에 달했던 학생의 체벌·언어폭력 경험은 조례가 거의 자리잡은 2019년 6.3%로 급감했습니다. 조례의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선언적 조례에서 벗어나 오히려 더욱 강력한 조례로 개정하자'고 요구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압니다.
6. 학생인권조례가 없더라도 학생인권은 지켜진다?
일반적 법과 원칙은 학생의 모든 삶을 구체적으로 포괄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아동·청소년의 인권은 더욱 특별하게, 또 더욱 구체적으로 보호되는 것이고, 위에서 얘기했듯이 그 보호의 일환으로 인권조례가 있으며 헌법과 법률이 이것의 존재를 적극 지지·권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권조례의 존재 여부는 '인권의 실현 여부'와 명확한 상관이 있습니다. 실제로 인권조례 정착기에 국가인권위원회(2016)가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인권조례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의 학생 인권침해적 요소(체벌, 강압적 동의서 등 9개) 존재율 차이는 평균 13%p에 달했는데, 현재 그 격차는 더 클 것입니다.
7. 학생인권조례는 법적인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인권조례는 헌법재판소, 대법원 등에서 오랜 기간의 법리적 검토와 판결을 거쳐(대법 2013추98, 헌재 2017헌마1356 등) 법률유보원칙, 과잉금지원칙 등 형식적 정당성이 지켜졌음에 더하여 내용적인 정당성이 확고함을 증명받았습니다. 특히 차별금지 조항에 관해서 헌재는 "차별금지 조항을 통해 달성되는 공익이 매우 중대한 반면, 제한되는 표현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는 표현으로 그 보호가치가 매우 낮다"라고 못박은 적 있습니다. 조례는 무언가를 '조장' 하거나 ‘혁명’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신앙인을 보호할 종교의 자유를 포함해서, 단지 세상에서 일반화된 '당연한 자유'만을 '보장'할 뿐입니다. 인권조례는 헌법과 법률의 정신을 담아 합당하게 만들어진, 정당하고 바람직한 조례입니다.
8. 그 누구도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지 않는다?
지난 십수 년간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하여 국내 사회계·교육계·법조계·종교계의 수많은 이들뿐만 아니라 UN, UNICEF 등 국제기구까지도 일관된 태도로 인권조례의 필요성을 외치며 그 당위성을 적극 검증하고 전파해왔습니다. 특히 올해 1월 UN 인권이사회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등 국제적 기준에 따라 지켜져야 할 권리를 약화시키기 위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라며 정부에 공식적으로 응답을 요구하였습니다. 인권조례는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단지 서울만의 평범한 조례가 아니라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실질적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장치인 것이고, 이것의 폐지는 도시-나라, 나아가 세계를 부끄럽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300년 전 민주 공화정을 외치던 이들, 200년 전 여성 참정권을 외치던 이들, 100년 전 인종 간의 화합을 외치던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당대에 그들의 사상과 행동은 돌팔매질을 당하고 단순한 '논쟁의 일각'으로 치부되었으나 지금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사람 된 도리를 모두가 지킬 수 있도록 하려면 우선 사람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그 원리를, 서울의 훌륭한 어른들이 지켜가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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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조례를 '공포의 대상'으로 정체화해 학생과 교사, 학부모를 적대 관계로 몰아넣는 것은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아닙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를 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실제로 그러는 제삼자 집단만 있을 뿐입니다. 저는 선생님과 부모님을 사랑하며 한국교육의 행복한 발전을 꿈꾸는 대한민국 학생의 한 사람, 즉 조례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로서 당 의견을 제출하는 바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명확히, 또 강력히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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